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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위플래쉬(Whiplash), 만들어진 절박함

by 말랑한단단지 2022.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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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악영화인데 스릴러 영화

영화 위플래쉬는 데미언 샤젤 감독의 영화로, 2014년에 개봉하여 국내 약 160만 명을 동원한 음악 영화입니다. 위플래쉬는 음악영화인데 스릴러 영화 입니다. 위플래쉬라는 영화는 특이한 점이 있는데, 나무 위키에서 위플래쉬라는 영화를 검색해 본다면 음악, 스릴러 영화로 분류가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긴장감이 넘치는 영화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긴장감은 영화 내내 지속되는데, 그 가운데 마일스 텔러와 JK 시몬스가 있습니다. 이 두 걸출한 배우는 음악영화이자 스릴러 영화라고 평가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긴장감을 극 내내 뽑아냅니다. 106분여간 지속되는 긴장감 있는 음악영화로 감독과 배우는 영화를 구성해나갑니다. 그 안에서 만들어진 절박함을 표현합니다.

2. 플래쳐 교수의 채찍질

영화 위플래쉬는 한 드러머의 성장기를 담고 있습니다. 앤드류 네이먼(마일스 텔러 역)은 음악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재능을 소유한 드러머입니다. 그는 드럼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으며, 언젠가 훌륭한 드러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테런스 플레처(JK 시몬스) 교수가 이런 앤드류를 발견합니다. 플레처 교수는 음악학교 내 가장 유명한 밴드의 지휘자이자 감독자입니다. 이런 밴드에 들어간다는 것은 드러머로서 성공가도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다는 의미였기에 앤드류는 플레처 교수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자신의 최선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플레처 교수는 앤드류를 자신의 밴드에 합류시킵니다. 플래처 교수는 지독할 정도의 완벽주의자였습니다. 플래처 교수의 밴드는 플래처 교수의 지배 하에 있었고, 하루하루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합주를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처음 접해본 앤드류는 첫 합주에서 그 분위기 자체에 압도당하고 맙니다. 플래쳐 교수는 드럼이 틀리자 드럼을 집어던지고, 트럼펫이 튜닝이 안 돼있자 연주자를 내쫓습니다. 얼떨결에 드럼 자리에 착석한 앤드류에게 박자를 맞추라며 뺨을 때립니다. 그렇게 플래쳐 교수는 채찍질을 지속합니다. 내가 때리는 뺨의 박자가 느린지 빠른지 맞춰보라며 압박하는 플래쳐 교수의 언행에 앤드류는 공황상태에 빠지고, 종래에 토하게 됩니다. 그러나 앤드류는 멈춰 있을 수 없었습니다. 우연에 의해 차지한 자리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앤드류는 별 볼 일 없는 드러머로 낙오할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앤드류는 드럼스틱을 잡은 손이 찢어지고, 피가 터져 드럼에 튈 때까지 손에 밴드를 붙여가며 연습합니다. 위플래쉬라는 곡입니다. 연주회 당일이 되고 앤드류는 연주회장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납니다. 교통사고가 나고 앤드류는 피를 흘리며 연주회장으로 오지만, 악보를 놓고 옵니다. 악보를 가지러 앤드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오고, 연주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앤드류는 밴드에서 방출됩니다. 드러머의 삶도 접기로 마음먹고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떠나기 전 앤드류는 플래처 교수를 밀고합니다. 플래처 교수 하에 지도하던 학생이 자살을 하게 되는데, 이게 플래처 교수의 정신적 스트레스 유발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그렇게 플래쳐 교수도 학교에서 방출되게 됩니다. 얼마가 지나 앤드류는 플래쳐 교수를 인근 바에서 만나게 됩니다. 플래쳐 교수는 앤드류에게 자신이 새로 맡게 된 밴드의 드럼 자리가 시원찮다고 은근히 말하며 자기를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묻습니다. 앤드류는 흔쾌히 수락하고 연주장에 갔으나, 연주곡은 위플래시가 아니었습니다. 플래쳐 교수는 앤드류가 스스로를 밀고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앤드류는 분노하고 혼자서 위플래쉬를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플래처 교수는 이런 앤드류에게 처음엔 비웃음으로, 조금 지나선 의아함으로, 조금 더 지나선 인정으로 급격하게 마음을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앤드류의 드럼 소리에 맞춰 위플래쉬가 연주되며 영화는 끝납니다.

3. 감상평(☆☆★★★) : 주입식 치열함

영화 위플래쉬는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그 여운이 긴 영화입니다. 관객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로 논의되는 것은 역시 플래쳐의 교수법이었습니다. 재능을 만개시키기 위해 당사자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것이 합당한 지 여부는 최근까지도 심심풀이 토론의 대상이 됩니다.
극에서 플래쳐 교수는 찰리 파커가 날아오는 심벌을 보고 의지를 다져 훌륭한 트럼펫 연주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자신을 연습의 극한까지 몰아붙인 찰리 파커가 실제로 위대한 연주자가 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입식 치열함이며, 만들어진 절박합입니다. 논어의 유명한 말 중 불여락지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즐기는 자만 못하다 라는 뜻인데,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주 위로처럼 쓰입니다.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즐기다 보면 어느새 성공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서장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농구 선수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즐겨서 되는 것은 없다고, 다 뻥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항상 치열했으며, 농구가 즐거웠던 건 어릴 적 한순 간 뿐이었다고 말합니다. 치열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치열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것은 즐기면서도 성공한 극소수의 천재를 제외하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치열함을 주입하는 교수법이 올바른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치열함을 이끌어낼지언정, 주입한다면 해당 객체는 망가져버리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영화 감상과 더불어 해본다면 더욱 즐겁게 감상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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